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37

높은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고, 때때로 이기적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도로서 자비를
행하는 이들 또한 무조건적인 완전한 가치에 이르는 자비가 아님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구족계’에서는 ‘범망경 보살계’와 같이 육식을 엄금하거나 충효를 내세우거나 하는 계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육식을 허용하는 부분을 보면, 참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들
고 아픈 비구들에게 약으로 먹게 허용하신 그 따뜻한 자비는, 마치 ‘범망경 보살계’에서 육식을 금한
것과 상치되어 ‘양립할 수 없는’그런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하게 ‘금했다, 허용했다’식의 논리로
는 풀 수 없듯이, 충효와 자비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분명 깊은 사유를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승
단의 모습이, 일본처럼 재가법사들이 출가자의 모습으로 불자들의 신행생활을 돕는 ‘재가자 승가’ 즉
‘보살 승가’라는 형태로 돌아갈 필요도, 재가자가 굳이 출가자의 모습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
국 현재 계율이 잘 지켜지지 않음은 보살계와 구족계를 같이 받아들이는 혼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범망경보살계본’의 중죄
重罪(바라이죄)
열 가지와 ‘구족계’의 중죄 네 가지
(비구)
혹은 여덟 가지
(비구니)
라이죄들은, 모두 ‘살
, 도
, 음
, 망
’이라는 사회에서도 인정하는 중죄들로서, 그 경중
輕重
과 개차
開遮
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계목들을 보면 ‘구족계’는 일상에서 중죄를 짓지 않게 미리 막도록 하는 것들과
출가자의 위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보살계’는 재가자이든 출가자이든 불교도로서 보리심을 일으
키는 심지
心地(마음바탕)
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보살계와 구족계 둘 가운데에는 상
치되는 부분이 다소 있더라도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볼 때, 어차피 8만 4천 근기의 중생들
각각에게 꼭 들어맞는 계율이라는 것은 없듯이 우리 모두가 작은 것 하나라도 계율을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둘이 상충되어서 조정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진지하게
토론할 가치는 있으나, 아직은 ‘보살 승가’로 바꾸어야 한다든지 보살계에서 막고 있는 육식을 허용
해야 한다든지 하는 등의 주장에는 그다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대승의 관점에서 바른 출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보면, 먼저 발심했을 때 심지법문에 초점을 맞
춘 ‘범망경 보살계’를 받고, 그 다음으로 출가자의 위의를 갖추도록 하는 ‘구족계’를 받아서 지니고
자 노력한다면,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불제자의 근기에 맞게 보완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다시 원점으
로 돌아가서, ‘보살계본을 암송하는 것은 출가자의 몫’이라는 점에 확신을 가지며 계율을 지키는 것
은 곧 마음의 향기임을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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