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35

그런 다음 갈마의식은 대적광전에서 행해졌다. 결계를 처음 할 때는 결계를 했다가 풀어주고 다시 결계를
해야 한다. 율장에 재미있는 예가 있다.
대계 안에 한 토지신이 있었는데, 결계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
했다. 그는 주지스님 꿈에 나타나“대계 안에 갇혀 있으니 꼭 감옥에 갇힌 것 같
아 고통스럽다"라고 했다. 이 토지신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이 마을에도 가
보고 저 마을에도 가보고 참견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 범위가 넓었는데, 가려고
할 때마다 호법신이 구령을 붙였다. 그 토지신은 답을 못해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지스님 꿈에 나타나 빨리 이 결계를 풀어서 나가게 해달라고, 여기만
머무는 게 싫다고 했다.
계를 풀어주는 과정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한다. 도량에 있는 신들이 편안하지 않으
면 우리도 편안하게 수행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정법으로 가피하는 건데 왜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사람
들도 선근이 깊지 않으면 그렇듯이 신들도 구속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다시 대계 결계를 하고 나서 정지
淨地
결계를 했다. 정지는 음식물을 보관하는 장소와 그와 관련
된 곳을 말한다. 냉장고나 찬장, 후원, 식품창고, 유실수가 있는 곳과 텃밭 등이 모두 정지가 된다. 이렇게
정지를 정해놓으면 음식물을 아무 데나 둘 수 없다. 그렇지 않고 먹을 것을 공부하는 곳에도 두고 자는
방에도 두면 음식에 수시로 손이 가서 음식에 대한 탐심을 절제할 수가 없게 된다. 대계 결계를 하고 나면
경계선으로부터 63보까지만 혼자 다닐 수 있고, 그 밖으로는 둘 이상 같이 다녀야 한다. 63보는 약간의
여유를 두는 것이고, 대계 밖에 혼자 다니면 승잔죄
1)
를 범하는 것이다. 곧 계율을 어기는 것이 된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사회가 많이 안전해져서 여자들도 혼자 다니지만,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는 매우 위
험한 일이었다. 그때와 상황이 바뀌었지만 결계를 하고 난 후로 우리는 포행할 때 경계 밖을 혼자 다니지
말아야 한다. 지계의식을 갖는 것은 이러한 작은 노력으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 결계를
했으니 포살도 법답게 하고 대중의 일은 법답게 갈마로써 처리되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러
한 노력이 청정·화합 승가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불자들이 환희심으로 스님들께 공양
을 올리고 공경하는 그날이 오기를!
승잔죄 : 바라이죄 다음으로 중대한 죄로 법답게 참회하면 승가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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