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30

“내가 출가하면 스님 아는 것 내한테 다 가르쳐
줄랍니까?”
똘망똘망 반짝이는 눈으로 산처럼 큰 성철 스
님을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었을 인순이는 그렇
게 대승사에 온 지 보름 만에 청안 노스님과 청
담 스님, 성철 스님을 따라 산허리를 넘고 고개
를 넘어 비구니 암자인 윤필암으로 간다.
출가의 길을 선택한 인순이의 뒤를 따라 대승
사 동편 사불산 기슭의 윤필암에 올랐다. 인순
이가 찾아갔던 당시에 2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
이 활발발하게 수행하던 분위기와는 달리 고요
하고 한가한 것을 넘어 적막함 그대로였다.
관음전 뒤편에서 과일을 씻던 보살님이 인기척
을 듣고 수줍은 듯 얼른 들어가더니, 이내 원주
스님의 환한 웃음소리가 나를 반겨줬다. 안내
받은 방에 들어가 짐만 내려놓고 신중단이 있는
마루턱에서 내리는 빗줄기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정갈한 마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인순이는 생면부지인 그곳에 자신만 두고 내려
가는 스님들 뒷모습을 무심히 보다가 고개를
돌려 검은색 장삼에 흰색 동정을 단 홍가사를
입고 신중단을 향해 불공드리는 스님 모습에
반해 얼른 머리를 깎고 싶어 한다.
큰방에서는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누군가 읊는
염불소리가 듣기 좋아 인순은 그저 따라서 기도
한다. 그러다가 법연으로 만난 월혜 스님을 은
사로 모시고 중 노릇 제일 잘한다는 법희 스님
한테 가위를 맡기고 삭발의식을 치른다.
큰방에 법상을 차려 놓고 성철 스님을 계사로
‘묘엄’이라는 법명을 받든 스님은 은사스님의
엄격한 지도로 몸과 마음을 단련해 간다. 소박
한 반찬에 세 끼 발우를 펴면서 능엄주를 독송
하고 염불을 배워 예불을 모신다. 봄에는 산나
물을 뜯어 반찬을 하고, 가을에는 가을걷이를
하며 대중생활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청빈한 습
관을 길들인다. 하루는 염불을 배우면서 차차
익힌 한글로 “내 걱정은 하지 마소. 누더기 한
벌이라도 중 노릇 잘하면 되니까 옷 해오지 마
소” 하며 집에 편지를 써 대중 모두가 기특해
하고 흐뭇해한다.
하지만 은사스님만은 혹시 큰스님들을 믿고
어긋날까 싶어 사중의 잘못된 것도 모두 스님
한테 덮어씌우며 칼바람을 세우기도 한다. 그
러나 스님은 큰스님들께 배운 대로 쉬워도 하
지 말아야 할 것과 어려워도 꼭 해야 할 것들을
구분하며 은사스님의 깊고 깊은 뜻을 헤아렸으
리라.
빗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앉았는
데, 트럭 한 대가 힘겹게 올라온다. 누군가 하
고 보니 윤필암 선원장 은우 스님과 총무스님
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곁에 앉
으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해맑은 선원장스
30
사불선원(윤필암) 선방 내부
어릴 적 묘엄 스님이 쓰시던 가마솥
사불선원 선방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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