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46

|
학인일기
|
믿음이란
법경 · 3학년
요즘 내가 후원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수행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비빔밥에 들어갈 나물을 가마
솥에 삶아서 통에 담아 냉동실에 저장해 두는 일이다. 또 다른 수행은 조왕님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즉 믿음을 갖는 행이다. 한 예로 하루는 그동안 냉동시킨 나물들을 꺼내 해동시켜 다시 깨끗이 씻
어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 하는데, 휴일과 겹쳐 도와줄 봉사자들이 아무도 없었다. 일손이라곤 정말 나뿐!
혼자서 나물을 씻고 있는데 처음 보는 한 보살이 일손이 필요할 것 같아서 왔다며 함께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뒤에는 또 한 분이 와서, 내일이 봉사하기로 한 날인데 날짜를 잘못 알고 왔다
면서 또 한 손 거든다. 아직도 씻어야 할 나물이 많은데 한 사람이 가고 나니,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거든
다. 역시 조왕님은 날 버리지 않으셨다.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원주를 옹호해주시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금강경이 있다. 이러한 믿
음으로 오늘도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발원한다.
은산철벽
혜훈 · 3학년
아침 햇살이 곱다. 그냥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시간들이다.
햇살도, 바람도, 피고 지는 꽃들도, 흘러가는 구름도….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이 길게 기지개를 켜듯이
여유롭고 한가로와 슬렁슬렁 도량을 한 바퀴 돈다.
꽃과 나무들은 때가 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피고지고, 피고 지는 그 자리에서 자기 본분을 다한다.
그런데 그걸 보며 흐뭇해하면서도 나라는 놈은 조금만 기특한 게 있으면 은근히 떠벌리고, 부족하거나 잘
못한 뭔가가 있을라치면 바로 머리가 스스로 합리화하려고 ‘돌돌돌’ 굴러가는 소리를 낸다. 참 우습다.
그래서 은산철벽이라 그랬나 보다. 다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바로 힐난하며 잘난 척 지적하지만 정
작 나는 어리석은 소꿉장난에는 마냥 속는다. 조용히 내 안의 자생 중생을 향해 일체만물이 둘이 아니라
는 부처님의 말씀인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46
1...,36,37,38,39,40,41,42,43,44,45 47,48,49,50,51,52,53,54,55,56,...68
Powered by Flipping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