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45

무척이나 고맙게도 은사스님이 영어로 쓰신 ‘법문책’이 있어 그 책을 한 장
씩 읽고 질문할 것들을 미리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즉석에서 그들의 질문
에 영어로 대답하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답하는 것은
내겐 큰 공부거리이다. 질문을 받는 것은 질문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
게 만든다.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질문은 사실 한국인 불자들에게 이미 받았던 것들이었다. 그리
고 불교를 만나기 전 내가 했던 질문들이다. “집착을 놓으라고 하는데 어떻
게 집착 없이 사랑할 수 있나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요?”, “세상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가 일찍 죽거나 고통 속
에 있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부처가 되기 위해선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요?” 등의 질의응답을 주고받은 후에는 좌선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그들이 뭔가 하나씩 느끼고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 마음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작년 9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밝아 보였다.
나는 불교를 만나기 전에 교회를 다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고등학생
때 친구 따라 교회를 처음 갔었고 대학생 때까지 다녔다. 교리도 배우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겉으로는 열심이었는데 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믿기지 않고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과감히 교회
를 떠났는데, 그때의 방황과 불안감은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집 있고 가족도
있고, 학교 다니고, 경찰서나 병원 안 가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나, 내겐 그게 아니었다. 교회를 다닌 것이 내게는 진리가 무엇인지 찾게
만들었다. 그래서 기독교 환경에서 자란 그들이 머나먼 이국에서 새로운 정신
을 찾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1년을 나와 함께하고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 중 2명은 수계를 받
고 법명도 받았다. 자기들의 법명을 무척 좋아했고 수계첩을 미국에 돌아가
서도 잘 간직하겠노라고 했다.
인간의 괴로움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었다.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도 동
서양이 따로 없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는 길에도 동서양이 따로 없었다.
그들에게도 뭔가 마음속 괴로움이 있었고, 그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불행의 원인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했다. 그 괴로움이란 우리 자신이 지었기 때
문에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내면의 절대적인 긍정이 우
리의 희망이고 우리를 자유로 이끄는 것임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
은 또한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 떠오른다.
“내 인생에서 스님을 만나서 감사해요.”
‘나 또한 너희들을 만나서 감사하구나.’
마음으로 답해 본다.
미국인 원어민 교사들.
풀브라이트(Fulbright, 한미교육
위원단)재단의 장학생들로
6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1~2년간
한국의 초·중학교에서 영어강사
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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