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36

| 자성청정 2 |
계율은 내 마음의 향기
‘범망경 보살계 포살은 출가자의 몫이다’라고 써놓았지만, 계율에 대한 이런저런 견해들을 대할 때마
다, 논쟁거리가 참 많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휘젓는다.
‘범망경 보살계’에서 때때로 강조하는 충효
忠孝
의 덕목은 유교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불
교의 자비
慈悲
와는 크게 다르며, 다른 계목들에서도 출가자만이 지니는 별해탈계
(구족계)
와 상치되는 부
분이 많다는 지적들이 있다. 그리고 ‘조계종에서 비구계 보살계를 같이 받으니 문제’라고 하는 주장
도 있다.
이들은 ‘성문계와 보살계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조계종 승려가 구족계
(비구 . 비구니계)
와 보살
계를 같이 받는 것이 계율에 혼란을 준다’ 것이다. 이 점에 많은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수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양쪽 의견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충효와 자비, 보살계와 성문계가 계율을
지킬 수 없는 걸림돌이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단편적으로나마 정리해 본다.
중국의 법장 대사와 우익 대사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은, 『범망경』에서 말하는 충효
忠孝
는 불경
佛經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자문화권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자비
慈悲
의 개념으로 차용한 단어라고 설
명하고 있다. 그러나 ‘범망경 보살계’에서 충효라는 단어가 나오는 계목들을 대할 때, 그것이 ‘부처님
의 자비심’이라고 곧바로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유교관
儒敎觀
인 충효사상에 물들어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여러 불교학자들이 『범망경』을
유학에 바탕을 둔 위경
僞經
으로 보고 있다. 내세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사관의 충효는, 불교에서 말하
는 자비에 비하여 제한적이고 이기적인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견해들도 있어서, ‘범망경 보살계’의 계목
(조항)
중에는‘구족계’를 지닌 출가자 입장에서 선뜻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드는 조항들도 여럿 있음
을 지적하곤 한다.
한편 현재 조계종에서 구족계를 받을 때 보살계도 함께 받게 하고, 포살일이 되면 이 두 가지를 다 암
송하다 보니, 계율에 대해 혼란을 느끼므로, 출가자에게 이 두 가지를 모두 지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한국불교는 ‘보살 승가’라야 옳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비구 승가’인지 ‘보살 승가’인지 종헌종법
에 명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계율과 관련한 논란들을 잠재울 수 있다”와 같은 주장도 있는데
이는 마치 그 둘을 같이 지니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 땅에서 계율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과연 그 둘이 상충되는 부분에 대한 고민으로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 구족계나 보살계 하나만으로도 출가자의 삶이 온전해질까? 아니면 출가자를 위한 완벽
한 계가 있을 수 있을까? 등등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번 여름 영화계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명량〉을 보면서도, 과연 ‘유교적 충효와 불교의 자비가
얼마나 다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순신 장군이 행한 충효와 중생들을 향한 애민과 존중은, 누가
봐도 보살도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충효를 부르짖는 이들이 모두 이순신처럼
유정 · 금강율학승가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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