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55

나는 언제쯤…
승현 . 1학년
바쁘게 지대방을 정리하고, 알림장에 적을 것이
많아지면 숙제를 하듯 공부방에 가고, 또 이런
저런 물건들을 여기저기로 옮기느라 바빴던 첫
철이 지나갔습니다.
방학이 끝날 때‘첫 철처럼 열심히 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강원에 왔는데, 마음먹은 대
로 살지 못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창불도
하고 서툰 후원생활을 익히고 또 익히는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투덜거림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좋은 도반일까? 내 잘못
은 보지 못하고 남의 그릇된 모습만을 찾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스님들
께서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네 마음만 흔들리
지 않게 단속해라”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잘 실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생일까요?
도반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도반
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밑바닥까지 보이면
서 같이 살고, 때론 형제처럼, 때론 이웃처럼, 때
론 혼자 묵묵히 걸어가면, 이 길이 덜 힘들고 재
미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숨기지 말고 나를 꾸
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때로는 나를 다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루를 지내면서 상대방에게 장난
으로 던진 말이, 또는 상황에 맞지 않게 한 내
말이 도반을 진심 나게 했거나 상처를 주진 않
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 물
론 저도 아직은 속가의 습을 버리지 못해서 하
루를 허덕이며 살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
고 삽니다.
나무가 숲이 되기까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을 지내면서, 따뜻한 햇빛과 촉촉한 비, 좋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순경계도 있
을 테고, 뜨거운 햇빛과 강력한 비바람과 차갑
고 딱딱한 땅과 하얀 눈의 역경계도 만날 것입
니다. 이런 자연 조건들을 이겨 내고 기다림과
정진의 힘이 자라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과 꽃,
풀들이 공존하면서 꿋꿋이 살아가는 것을 보며
배웁니다.
나를 포함한 도반스님들 또한 각각 어린나무
로 강원이라는 숲에서 같이 공부하고 생활하지
만 다르게 느끼고 생활할 수도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선근이 있어서 부처님의 제자로 만났기
때문에 아픈 만큼 더 배우고 다듬어질 것을 믿
습니다. 나무가 잎으로 가득 차 풍성해지듯 넉
넉하고 고요한 마음을 바탕으로 강인한 정신과
끈기를 기르겠습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
만 하나하나 배우면서, 차근차근 오르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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