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지 2014년 23호 - page 11

그 곁에 선녀가 수박, 참외, 복숭아를 담은
과일접시를 들고 서 있다. 동자는 차를 끓이느
라 여념이 없다.
산신
山神
탱화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토착화하
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간의 신앙 대상인 산신
을 호법선신으로 수용하고 이를 인격화해서 묘
사했다.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이 깊은 산속 노
송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이 도상의 특징인데, 독
성탱화와 마찬가지로 시봉하는 선녀와 동자가
등장한다. 봉녕사 산신탱화에서는 선녀 대신
동자가 산삼과 영지버섯, 복숭아와 모란을 들
고 서 있는 것이 다르다. 산신이 지팡이를 짚거
나 산삼을 들고 있는 무속화의 모습이 변형된
것이다. 인간의 수명과 다산
多産
을 관장하는 산
신의 영험함을 드러내기 위한 도상이다.
산신의 뒷배경에는 독성탱화와 마찬가지로 소
나무와 높은 봉우리가 그려져 있다. 독성탱화
를 그린 작가가 이 탱화도 그렸음을 알 수 있
다. 이 작가는 산신탱화를 그리면서 일반 회화
에 관한 지식을 한껏 살렸다. 먼 산 뒤에 기러
기가 날아오르고 강물에 배가 떠 있는 모습은
「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
」의 ‘평사낙안
平沙落雁
’과
‘원포귀범
遠浦歸帆
’을 수용한 흔적이다.
이 밖에도 칠성
七星
탱화는 인간의 수명과 길흉
화복을 관장하는 도교의 북두칠성 신앙을 불
교에서 받아들여 성립된 불화다. 금륜을 든 치
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 협시로 배치되고, 칠성여래, 자미대제, 태
상노군, 삼태육성, 이십팔수 등 여러 존상이 표
현된다.
칠성탱화와 독성탱화, 산신탱화는 주류 불화
는 아니지만 불교의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약사
전을 나와 대적광전 앞에 섰다.
봉녕사 대적광전은 안팎이 화엄의 세계로 아
름답다. 내부는 화려하게 모신 삼신불
三身佛
금빛 찬란하고, 외부는 80화엄변상도로 장엄
하다. 영단 옆에 한 송이 연꽃처럼 은은한 미소
를 짓고 계신 세주당 묘엄 스님의 영정이 눈에
띈다. 그 옛날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법당을
짓는 과정에 분명 어려움도 많았으리라. 마음이
절절하다 못해 애절하다.
영정 속 큰스님의 깊고 푸른 눈매를 바라보
고 있자니, 먼지 풀풀 날리고 쥐가 주인 노릇
하던 봉녕사를 지금과 같은 비구니 교육의 요
람으로 키워낸 것은 학인스님들을 제대로 가르
쳐야겠다는 큰스님의 원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적광전이 드러난 아름다움이라면 큰스님의
소임은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드러남은
드러나지 않는 원력이 있어야 드러날 수 있다.
원력이 먼저다. 원력을 향한 소임이 출발이다.
그래서 소임은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부처든
보살이든 비구든 비구니든 그 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받는 이유
다. 어떤 자리에 있든 소임을 충실히 하는 사람
은 부처님처럼 위대하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부처의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중의 일을 하고 있
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
해 따라 하는 중생의 일을 하고 있는가? 아름
다운 봉녕사는 날마다 우리에게 그렇게 묻는
다.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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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남은 드러나지 않는 원력이 있어야 드러날 수 있다.
원력이 먼저다. 원력을 향한 소임이 출발이다.
그래서 소임은 중요하다. 어떤 자리에 있든 소임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부처님처럼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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