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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봉녕사

제목 비구니의 삶과 철학이 있는 '봉녕사'
등록일 2018-09-14 조회수 5123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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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바람이 살갑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가 무색하지만 그래도 봉녕사 가는 길은 그리 불편치 않았다. 아름답고 청정한 곳. 고려 희종 4년에 원각 국사가 창건한 사찰. 수원 광교산 기슭의 정기를 품고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곳.

봉녕사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속세의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 엄마 닭이 알을 품는 둥지 같은 그 곳에 ‘대적광전, 청운당, 우화궁, 소요삼장, 금비라, 육화당/향적실, 향하당, 범종각’ 등이 살포시 얹혀있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서야 이곳에 이르렀다. 그동안 너무도 바빴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 뿐. 이제야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이 머문다. 앞으로 남은 인생길의 방향을 그려봤다.

쉬지 않고 달려 왔든, 후회 없이 걸어왔든 때가 되어서야 이곳을 찾게 됐다. 강퍅한 마음이 대적광전 언저리에서 고꾸라졌다. 대적광전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비로자나 부처를 주불로 좌우로는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비로자나불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 우주의 삼라만상을 주관하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다. 진리의 본체이자 침묵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법신불이다. 이 부처를 모신 곳이다.

법당 내 외부 벽에는 80권 화엄경에 따라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설법장면을 그린벽화가 숙연하다. 상단의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는 목각으로 조성돼 있다. 그 누구인들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있을까.

대적광전을 좌우로 모신 약사보전과 용화각이 근엄하다.

약사보전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난과 근심을 소멸해 의식을 다스리는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인연을 체득케 하는 부처가 모셔졌다. 이곳은 온갖 병에 시달리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이 성불하는 곳이다.

용화각은 석가모니불의 입멸 56억 7천만년 뒤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해 중생을 구원할 미륵 부처를 모신 법당이다. 두 곳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생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이심전심의 마음을 두고 나왔다.

용화각을 바로 앞에서 수호하는 향하당. 이름만으로도 그 값을 다하고 있다. 이곳은 부처의 가르침이 향기와 같이, 노을과 같이 온 우주법계에 두루 비추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공간이다.

봉녕사 오솔길 끝자락에서 멀리 마주 보이는 우화궁. 학인스님들의 수행공간이며 2층에는 금강계단이 갖춰져 식차마나니 수계식이 거행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수도하는 학인 스님들이 경전을 독경할 때 하늘이 감동해 꽃비 내리길 염원하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우고”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한 소절이 어렴풋하다. 비구니계율근본도량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이 자리 잡은 청운당.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정갈하고 깨끗한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은 지혜가  맑아지고, 반야(지혜)를 수호하는 약사선신의 옹호에 힘입어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봉녕사 첫 머리에 앉은 사찰음식 교육관 금비라의 가치를 읊었다.

금비라는 최신식 조리시설을 갖췄으며 계절에 따른 제철 재료로 다양한 요리강연, 시연, 실습이 이뤄진다.

금비라 맞은편 일자로 서 있는 육화당. 일요법회, 템플 등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언저리에 머무는 금라. 불교뿐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양 강좌와 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금라 옆자리를 차지하는 소요삼장. 경ㆍ율ㆍ론 삼장에 자유로이 노닌다는 의미다. 지하1층, 지상 3층 건물로 2만여 권의 불교 서적이 소장돼 있다.

이 절의 중심에서 봉녕사의 기운을 모으는 범종각. 종소리가 모든 사물에 울려 퍼지면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이 밝아지고, 지옥ㆍ아귀ㆍ축생의 고통이 멀어진다. 이로써 모든 중생이 깨달음의 반열에 오른다.

봉녕사 한울타리에 모여 있는 불당과 교육관, 문화공간을 둘러보면서 지친 심신을 위로했다. 사찰의 영험한 운기에 내면의 자만심이 사그라진다. 바쁜 일상에서 불현 듯 떠올랐던 여유로움이 그리워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됐다.

저 멀리 들리던 목탁 소리에 먼저 마음의 짐부터 내려놨다. 무겁게 메고 왔던 뒤엉킨 자아들이 스스로 실마리를 풀어냈다. 종교인으로서 이곳을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저 사찰이 주는 숙연함과 평안함을 동경했다.

부처의 형상이 무서웠던 철없던 마음이 까마득하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에 선을 그었던 독선이 무너졌다. 선(善)의 깊이로만 도량을 헤아렸던 오만이 부끄러웠다. 성공의 잣대로 인생의 값어치를 달았던 편협한 식견이 안타까웠다. 함부로 내 뱉었던 말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비워야 채워지는 삶의 이치를 비로소 알게 됐다.

봉녕사 오솔길을 걸을 때 까지도 어지럽고 흩어졌던 생각의 편린들이 이제야 궤를 맞추는 듯했다. 나이테처럼 삶의 연륜도 훈장이 된다. 아름다운 주름이 편한 인상이 듯 연륜의 넓이와 깊이는 가치가 된다.

이따금 우리는 일상을 탈피해 인생을 되짚는 기회를 가질 만하다. 가속도가 붙은 우리네 인생에 한 번씩은 브레이크를 밟아줄 필요가 있다. 봉녕사에 오갔던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다. 사찰이 주는 고즈넉함은 가슴 한켠에 덤으로 간직했다.

꾸역꾸역 채워왔던 108번뇌를 어느 정도 이곳에 내려놓았다. 또 다시 채워진다면 다시 찾으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때가 더디 왔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 다녀온 여정이었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건방진 소견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인생이 평탄하다.

봉녕사에서 얻은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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